손락천 사무장입니다.
여행 중 한라산 등반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느낌을 글로 공유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글이어서 존칭은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한라산기
- 법무법인 중원. 2016. 6. 5.의 한라산 여행 -
몸담은 직장(법무법인 중원)의 5주년 여행 2일차의 이야기다. 우리는 오전 7시부터 시간차를 두고 조식을 했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지만, 전날에 있었던 우중 여행과 유흥이 개인마다 달리 영향을 미쳤을 것이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라마다 호텔의 조식 메뉴는 많지 않았지만 깔끔했고, 나는 계란 부침과 베이컨, 그리고 전복죽을 먹었다. 결코 건강한 식단이라 할 수 없지만, 아직은 나름 아쉽지 않은 건강상태이다보니 그냥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는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우리는 잠시 쉬다가 오전 9시경 호텔 로비에 집결하였고, 그 시로 한라산 어리목 코스의 출발지인 휴게소로 향했다. 부민의 전세버스는 마치 등산을 다해줄 듯 끝없이 올라갔다. 해발고도가 만만치 않았던지, 버스에 몸을 실은 내내 귀가 잠겼다가 터지기를 반복하였다.
30분가량 달려 어리목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인솔자로부터 도시락을 나눠받은 후 휴게소에 있는 덩치 큰 바위에 모였다. 바위에는 [한라산]이라는 한자 글씨가 크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 곳에서 38명 모두가 모인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실 이때의 심정은 이미 [한라산]에 와서 그 상징물에서 인증 사진까지 찍었으니 [발길을 돌려 제주의 도심으로 향하는게 어떨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일 뿐, 대의를 위해서는 등반을 피할 수가 없다.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죽을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죽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목 들머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도대체 해발고도가 얼마나 되었던 것인지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흩날렸다. 그저 구름이 아니라 차가워 아릴 정도의 물 알갱이들이 덮쳤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하였다. 마음 단단히 먹고 어리목 들머리의 사각형 나무문을 디딜 터였다.
하지만, 웬일인가? 경사는 높지 않았고, 무성한 원시림과 그 아래에 빼곡이 깔린 조릿대가 경이로울 뿐이었다. 안개 같은 운무는 여전하게 오갔고, 조금 오르다가 다시 내리막길에서 보인 이름 모를 계곡의 다리는 [과연 선경이 이러할까]라는 감탄을 자아내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몰랐다. 이것이 험로의 시작일 줄을 말이다.
곧바로 급경사였다. 좌우로는 양탄자처럼 깔린 조릿대에 우뚝 솟은 나무가 빼곡하였고, 위로는 잎사귀가 하늘조차 가릴 정도여서, 전혀 [힘들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그것은 한라산에 사는 흰 사슴에게나 그러한 것이었다. 계단이 급해도 이렇게 급할 수가 없다. 금새 숨이 가팠다. 다리가 걸음을 거부하였고, 마치 [내한테 와이라노?]라며 호통을 치는 듯 했다. 결국 나는 선두에서 밀려나 꼴찌 중의 꼴찌가 되었다.
그 와중에 표지석 하나와 조우하였다. 적힌 글씨는 [1,100m]다. 왠지 어리목 들머리의 구름이 예사롭지 않다 하였더니, 그 들머리마저 해발 1,000m는 되는 곳이었던가 보다. 목적지의 해발고도가 1,700m라고 하니, 이건 까마득하여도 너무 까마득한 상황이었고, 머릿속에서는 경광등에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돌이켜보면, 어찌 걸음을 뗐는지 황망하기만 하다. 좌우와 위가 막힌 숲길은 무려 1,400m의 표지석이 나온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이런 하늘마저 보이지 않는 숲이라니! 겹친 좌절이 오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아마 발길은 멈추어 아래로 향하고 있었을 터다.
그러던 중 거짓말처럼 하늘이 뚫리었다. 1,400m 지점과 1,500m 지점의 어느 중간쯤 되었을까? 좌우와 위를 감쌌던 숲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완만한 경사의 개괄지가 좌우를 둘렀으며, 하늘은 그렇게 푸를 수가 없었다. 마치 대관령의 목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지인 듯 아닌 듯 이름 모를 야생초와 나지막한 관목이 지천이었고, 저 멀리 백록담을 품은 기암이 장엄하였다.
불가의 [돈오]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갑자기 풀린 다리가 긴장되고, 몸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 때 아닌 철쭉과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은 관목, 그리고 이름 모를 고사목과 야생화가 향기로웠다. 나는 이 경이로움에 휴대폰을 꺼내어 풍경 샷과 셀프 샷을 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숲 위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은 머릿속을 환하게 밝히었고, 힘겨움은 저만치 날아간 지 오래였다.
거듭된 [널빤지를 댄 길]과 [돌길]을 걷다보니 어느 듯 1,500m 표지석이 보였고, 조금 더 너머에서 만세동산을 만났다. 이젠 힘들다는 생각이 흔적을 감추었고, 반갑게도 멀리 가버려 영영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던 권재칠, 최지연, 김은주 변호사님, 그리고 도대현, 조엽, 유병덕 차장까지 마주쳤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라산 구름 위의 경이로움이 인연의 소중함과 반가움을 일깨워 준 것이던가? 반추하건대 열린 마음의 호연지기는 다만 조우하기가 버거운 것일 뿐, 결코 허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올라 1,700m 대피소에 이르니 멀어서 보이지 않던 분들 모두가 그 곳에 섰다. 오늘의 이 오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껍질을 깨뜨린 순간의 그 벅참이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 모두의 벅참이 윗오름세에 남은 것이리라.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이렇게 높은 곳에 이르기는 처음인 듯하다. 그제야 고단한 다리는 털썩 내려앉았고, 잠시 숨을 돌리며 멍하니 있다 도시락을 꺼냈다. 그늘 한 점 없는 대피소의 너른 마룻바닥에서다. 따가운 햇볕이었지만, 덥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지대가 높기 때문이리라. 여름엔 볼 수 없었던 까마귀 떼가 대피소 위를 날았고, 거짓말처럼 구름이 몰려와 시원한 물 알갱이들로 정신을 맑게 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실상과 허상 사이에 놓인 세계인 듯 꿈같은 시간에, 꿈같은 점심이었다.
좋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분들이 내려갈 때는 꽃길일 것이라 하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름이 벅찼다면 내려감도 수월치 않을 것인데, 이를 몰랐던 탓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 내려오는 길은 벅찼고, 그 길에서 정재민 주임이 발목을 접질리었고, 유병덕 차장이 넘어졌으며, 나 또한 넘어질 뻔 했다. 역시 높은 산은 자태를 감추어 쉽게 드러나지 않고, 그러한 만큼 자태를 홈쳐 본 사람은 내려오는 내내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 또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높아도 너무 높은 곳이었던가 보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귀가 멍멍하다가, 이호태호 백사장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걸은 후에야 귀가 뚫리었고, 만물이 선명하였다. 그래도 영영 잊지 못할 산행이었다. 대구로 돌아온 지금에도 하늘이 열리던 그 순간의 심장울림이 선명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기억은 머리 보다 심장에 남을 듯하다.
돌이키면 오르는 내내 걷다, 쉬다, 퍼질러 앉기를 거듭한 것 같다. 아마 십여 발짝 디뎠다가 1~2분을 쉰 듯하다. 내버려 두지 않고 기다리며 다독이신 김홍창 국장님이 아니었다면, 목적지에서 낙오 없이 보자던 김영준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이 산행을 기획하셨던 구성원 변호사님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이 여행과 산행을 준비하셨던 여러 동료분들이 아니었다면, 아직 한라산은 내 삶의 어느 구석에서도 있지 못하였을 테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감사드린다. 단언컨대 이 여행은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