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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시장]이면계약(裏面契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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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종철 (1.♡.250.168) 조회 : 3126 | 2015-08-25 16: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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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칠 변호사 |
박 사장은 지방에서 수십년간 작은 건설회사와 레미콘회사를 운영하면서 건실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중도에 외환위기를 맞았으나 성실한 일처리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사업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에는 부침(浮沈)이 있는 법. 박 사장도 골프장 공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이는 바람에 결국에는 건설회사가 부도에 직면하게 되었다.
박 사장은 건설회사의 채무를 재조정하고, 변제기한을 유예받아 재기를 하기 위해 법인회생절차를 법원에 신청하게 됐다. 이에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 그 관리인으로 박 사장이 선임되었다. 회생절차의 관리인은 법원의 감독하에 회사 채권자를 위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박 사장은 회생계획안을 세워서 채권자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채권자집회에서 회생계획안에 대한 채권자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채권자들을 설득하게 됐다. 그런데 채권자 중 한 시중은행을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박 사장은 은행의 여신관리부 직원들에게 동의를 해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자 은행직원이 박사장에게 묘한 제안을 했다. 박 사장이 제출한 건설회사 회생계획안에 의하면, 건설회사가 채권자들의 채권을 모두 갚을 수 없으므로 출자전환의 형식으로 신주를 발행하여 채무를 탕감받도록 되어 있었다. 즉, 건설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되 1주당 발행가액을 몇 십만원으로 정하여 채무를 감해주는 것이었다. 건설회사가 출자전환으로 채권자들에게 발행하는 신주는 사실상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은행직원은 박 사장에게 출자전환으로 발행하는 건설회사의 신주를 은행이 떠안게 되면, 이를 다시 박 사장이 액면가 이상으로 사라고 요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은행직원은 이에 대한 연대보증을 요구하였고, 회생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레미콘회사의 연대보증을 원하였다.
두 번째 채권자집회를 앞두고 있는 박사장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은행의 동의를 받아야 회생계획에 대한 인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박사장은 결국 은행직원이 요구하던 바에 따라 당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설회사 주식을 후에 액면가 이상으로 매수해준다는 주식매매계약을 하면서, 레미콘회사의 연대보증까지 하게 되었다.
박 사장은 은행이 설마 위와 같은 이면계약(裏面契約)을 이행하라고 소송까지 하겠냐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건설회사의 채권자가 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이나 채권자들도 많이 있는 상황에서 은행에게만 위와 같은 이면계약을 해준 것을 알게 된다면 다른 채권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하고, 더구나 은행이 혼자만 살자고 이면계약을 한 것이 알려지면 은행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은행은 몇 년 있다가 박사장과 레미콘회사를 상대로 출자전환으로 받은 주식을 매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준다면, 향후 회생절차에서 채권자들은 관리인이 된 사장에게 이면계약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다면 회생절차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박 사장의 경우에도 이면계약을 법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정의에 어긋나는 결과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박사장과 같은 경우에 이를 허용하지 않아야 결국에는 은행이 어려움에 처하여 회생절차를 신청한 다른 사장에게 같은 형태의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법적으로 집행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계약이 생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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